작성일 : 19-02-22 03:35
장하성 前청와대 정책실장, 재산 104억…8개월 만에 8억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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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청와대 전 정책실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해 11월 퇴직 당시 총 104억1693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같은해 3월 정기 재산공개액(96억294만원)보다 8억1400만원 늘었다. 매달 1억원씩 재산이 늘어난 셈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2일 공개한 고위공직자 수시 재산공개 내역에 따르면 장 전 정책실장이 이같이 재산내역을 신고했다. 지난해 11월2일~12월1일 사이 임면된 고위공직자 35명 중 재산 최상위자다.

장 전 정책실장의 재산 증가는 대부분 부동산과 예금에서 이뤄졌다. 장 전 정책실장 부부가 공동소유한 것으로 보이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값은 지난해 3월 당시 12억5600만원에서 8개월 만에 3억2800만원 증가한 15억8400만원으로 신고됐다. 같은 기간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한 단독주택도 6000만원 오른 2억500만원으로 나타났다. 장 전 정책실장이 보유한 토지는 지난해 3월보다 1226만원 증가한 2억7178만원이다.

장 전 정책실장과 그의 직계가족이 보유한 총 예금액은 82억5511만원이다. 지난해 3월(77억9110만원)보다 4억6401만원 늘었다. 이는 장 전 정책실장 본인 및 배우자의 급여와 투자수익 증가에 따른 것이다.

반면 유가증권은 지난해 3월 1억5620만원에서 1억4714만원으로 다소 줄었다.

이번 수시 재산공개를 통해 공개된 현직 고위공무원 중 재산 상위자는 한명진 방위사업청 차장(30억6537만원), 조명래 환경부 장관(20억4186만원), 신명식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원장(18억7382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퇴직자 중에는 장 전 정책실장에 이어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33억6394만원), 방희석 전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19억4344만원) 등 순이다.

김연명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은 14억4749만원, 정운현 국무총리비서실장은 7263만원,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11억1831만원을 각각 신고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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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억울해 휴학하고 목포로…좌절에 빠져 하루하루 보내며 노래도 안 듣고 그만둘까 생각1966년 신인 가수 시절 때의 남진 장로(오른쪽)의 모습. 왼쪽부터 가수 이상열 문주란씨.

1966년 작곡가 김영광은 무명이었다. 발매한 레코드판도 한두 개밖에 없었다.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일하려고 서울로 올라와 근처 여관을 잡아 놓고 있었다. 그가 날 여관으로 불러 가보니 기타가 하나 있었다. 기타를 연주하며 나에게 노래를 따라 해 보라고 했다. 자신이 만든 12곡 중 3곡을 나에게 맡긴다고 했다. 레코드판에 12곡이 들어가던 때였다.

그해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울려고 내가 왔나/ 섬아가씨’ 레코드판은 신인가수 격이었던 성태미 송춘희 성재희와 함께 3곡씩을 맡아 만든 앨범이었다. 무명이었던 내가 나름대로 유명세가 있던 이들과 함께 앨범 제작에 참여한 것이다. 내가 불렀던 곡은 ‘울려고 내가 왔나’와 ‘토요일 오후’ ‘연애 0번지’다. 연애 0번지의 경우 룸바 스타일의 곡이었다. ‘밤바 밤바 바밤바’ 리듬이 팝송과 같았다.

‘울려고 내가 왔나’는 트로트 스타일이다. 나는 당시 트로트를 불러본 적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달을 연습했다. 참 하기가 싫었다. 이 노래를 빼고 2곡만 부르면 안 되냐고 물을 정도였다. 김영광도 가수 지망생이나 다름없던 내가 3곡이나 부른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며 직접 부르겠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나 서울 중구 장충동의 녹음실로 가수들이 모였다. 김영광이 ‘울려고 내가 왔나’를 부르기 위해 마지막 차례로 녹음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음이 높게 올라가지 않았다. 중성적인 목소리를 내는 소위 ‘옐로우 보이스’였다. 몇 번을 해도 안 되니 녹음실에 눈치가 보였다. 녹음실 예약하기가 쉽지 않던 때였다.

사람들은 “빨리빨리 녹음하자”며 그 곡을 내가 부르도록 떠밀었다. 이전에 이 곡으로 연습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노래를 부르는데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났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감정이 북받쳐왔다. 감정을 담은 그 한 번의 노래로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새 레코드판이 나오자 해야 할 일은 방송국에 다니는 것이었다. 당시 라디오방송으로 첫째는 동아일보에서 운영하던 라디오방송국인 동아방송이었고 둘째는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 있던 CBS 기독교방송이었다. 방송국 PD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곡을 소개하니 반응이 좋았다. 아침에 눈만 뜨면 방송국에 다니는 게 일이었다.

하루는 동아방송 음악 담당 PD가 ‘너 일루 와봐’ 해서 찾아갔다. 그 PD는 대뜸 “너 금지 당했어”라고 통보했다. “왜 금지입니까”라고 물으니 연애 0번지라는 곡의 제목이 퇴폐적이라고 했다. ‘무한’ 또는 ‘아픔’ 같은 심오한 뜻이 담겼든, 신체 특정 부위를 형상화했든 무조건 금지라고 했다. 어렸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0’이라는 숫자 하나 때문에 금지된 것이다. 사실 ‘0’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 맥이 빠져서일까. 그날 포장마차로 달려가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던 소주를 진탕 마셨다.

고향인 목포에 3개월 정도 내려가 있었다. 그때가 가을이었다. 학교는 휴학했다. 사회에 대해 무엇을 알았겠는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의 아픔을 느꼈다. ‘숫자 0이란 무엇인가’ ‘이 곡이 왜 금지가 됐는가’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1번지 2번지는 재미가 없으니 0번지라 한 것인데 억울하기만 했다. ‘이런 게 사회구나’ 느끼며 좌절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노래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다. 어떤 노래든 아예 듣지 않았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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