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 일반인들은 조금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를 들어 공론화, 혹은 숙의 민주주의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거기에다 직접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와 같은 단어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참여 민주주의는 노무현 정권 때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다. 그런데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때문에 참여 민주주의라는 존재와 댓글의 상관관계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먼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보자. 민주주의는 대중을 뜻하는 그리스어 ‘데모스’(
Demos)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이런 민주주의는 몇몇 사람의 판단보다는 집단의 판단, 집단 이성이 더욱 현명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체제다. 아마도 여기에 반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듯하다. 물론 플라톤이 말했던 ‘철인’(
Philosopher King)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건전한 이성을 가진 절대 다수는 이런 허황된 생각보다는 집단 이성을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 민주주의라는 것도 집단 이성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런 집단 이성은 개별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가 사는 2018년 대한민국은 개별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집단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댓글 문화’다. 통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을 방문하는 네티즌 중에서 댓글을 다는 이들은 0.9%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0.9%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왜냐하면 이들 ‘0.9%’는 댓글을 통해 ‘여론’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댓글을 통해 여론이 되는 이유는, 댓글을 통해 뉴스를 읽은 이들의 이성적·개별적 판단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공감이 많은 댓글을 보면,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아마도 다른 생각을 가진 모양’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하나는 이른바 ‘동조화 현상’이다. 즉,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다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동조화 시키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현상은 ‘침묵의 나선’이다. 자신의 의견이 소수라고 생각되면,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동조화 현상과는 달리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을 바꾸지는 않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을 주저하게 돼 스스로를 깊은 침묵 속에 빠뜨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참여 민주주의의 정착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 침묵의 자발적 강요, 그리고 의견의 획일화는 민주주의의 적(敵)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상황을 이렇게 만드는 주범 가운데 하나가 ‘댓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의 포털 사이트를 보면 이른바 ‘아웃링크’ 방식이 대부분이다. 전 세계의 검색 포털의 점유율 90%를 자랑하는 구글을 비롯해서, 러시아의 1위 포털 얀덱스, 중국의 바이두도 뉴스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하고 이곳에서 뉴스를 보는 ‘아웃링크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한국처럼 포털이 뉴스를 ‘진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 우리 포털들은 뉴스와 댓글에 집착할까? 그 이유로 자본의 논리를 꼽을 수 있다. 포털 방문자들이 댓글을 봐야 해당 사이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포털들은 광고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참 기가 막힌 세상이다. 이들 소수 포털의 자본 논리 때문에 정치판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왜곡의 원인을 그냥 지켜봐야 한다니 말이다.
우리는 지난 정권에서 자행된 댓글 사건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이 불거지고 있다. 이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포털에서 댓글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는 참여 민주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참여라는 이름을 가장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주범인 것이다.
‘드루킹 사건’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댓글이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손 봐줘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 확신한다.
최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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