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섣부른 일반화는 아주 위험하고 예외도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들어보지 못하였거나 들어보았지만 실감할 수 없는 우스개에 불과한 이야기가 한때는 많이 떠돌았습니다.
집에 밤늦게 돌아온 가장이 내뱉은 단 세 마디
“애들은?”
“밥도!”
“자자!”
이 이야기의 배후에 있는 서글픈 현실
‘나는 밖에서만 살고 가정은 모두 아내에게 맡긴다!’
다시 말하면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들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 관심이 없고 혼자만 즐기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지요.
한편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직장에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지요.
이때의 중견 간부들은 직장에서 젊은 여자 부하직원을 거느리게 되었지요.
이들 상당수는 가정에 부인에게 아들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니 부하 여직원들이 귀한 아내, 엄마, 귀여운 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지요.
실제로 부하 여직원들은 직장에서 상사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중견 간부들의 중대한 착각이 시작되었고 비극이 시작된 것이지요.
어떤 모지리 들은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왜 싫다고 거절하지 못하고 술을 따라 주었지?”
그런데 힘없는 여직원들이 거부하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요?
그러니까 모지리 이지!
다시 말하면 일부 중견 간부들은 젊은 여직원들의 실생활이 아닌 꾸민 태도에 착각을 일으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권력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권위적인 정권이 집권하였고 이런 성희롱, 성폭력은 수면 아래에 숨어 있었지만 촛불이 만든 보다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자발적인 미투 운동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 때의 중견 간부들의 상당수는 지금 별 볼일 없는 어르신이 되었고 이들은 좋았던 그 때를 회상하면서 촛불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 여직원들이 먼저 꼬리쳤는데 왜 성희롱, 성폭력이지?”
엉터리 소리를 내뱉으며!
“이 모든 것이 촛불과 문재인이 만들었다!”
이들 얼빠진 어르신들이 가짜뉴스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이지요.